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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넷>, <덩케르크>, <인터스텔라>, <메멘토> 등 역대급의 긴장감 넘치는 작품들을 선보여 온 거장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의 <오펜하이머>는 1억 달러라는 제작비를 기록했습니다.
주연 킬리언 머피, 조연으로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등의 화려한 출연진, 아이맥스 포맷 전용 영화, CGI에 의존하지 않은 핵폭발 장면 촬영 등의 화제를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첫 번째 트레일러 영상이 공개된 직후 나온 2022년 12월 18일자 <버라이어티> 기사에 따르면 영화는 퓰리처 상 수상작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 로버트 오펜하이머 평전>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본 정보 서평
2005년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 수상
2006년 퓰리처 상 수상
2010년 APCTP 올해의 과학 도서
2011년 한국과학창의재단 우수 과학 도서
2023년 영화 <오펜하이머> 원작
이 책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1부에서는 오펜하이머의 가족사와 어린 시절, 물리학자로 성장하는 단계
▶ 2부에서는 오펜하이머의 오랜 연인과 아내를 비롯해 그의 인생을 바꾼 만남들
▶ 3부에서는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지휘자로서 활약하는 과정과 트리니티 원폭 실험 성공
▶ 4부에서는 히로시마 원폭 투하를 계기로 달라진 그의 심경과 입장
▶ 5부에서는 매카시즘에 맞물린 보안 청문회 현장에서 수모를 겪고 물러난 오펜하이머의 말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 신의 불을 훔쳐내 인간에게 가져다준 대가로 매일 독수리가 간을 쪼아 먹는 형벌을 받게 됩니다.
히로시마 원자 폭탄 투하 이후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과학자들은 연일 언론의 찬사와 더불어 대중의 관심과 존경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맨해튼 계획의 총지휘자였던 오펜하이머는 점차 인류를 향한 경고의 목소리를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냉전의 시대 몰아친 매카시 광풍에 휩쓸려 일종의 본보기로서 추락하고 맙니다.
사회학자 대니얼 벨이 나중에 언급했듯이, 오펜하이머의 시련은 전후 시기 “과학자들의 구세주로서의 역할”이 끝났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어린 시절과 성장
독일 출신의 이민자 1, 2세대인 양친을 두고 부유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한 오펜하이머가 다녔던 뉴욕 에티컬 컬처 스쿨은 창립자 애들러의 가르침대로 세상이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를” 보게 하는 학교였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내성적인 천재 소년이었던 오펜하이머는 이곳에서 평생 스승인 교사 허버트 스미스와 더불어 점차 더 넓은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또한 그가 평생 사랑한 뉴멕시코 주로 처음 여행을 떠난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펜하이머 가족이 자주 머물던 페로 칼리엔테 목장은 평생 그의 휴식처가 되어 주었습니다. 1922년에 처음 방문한 인근 로스앨러모스 목장 학교 부지는 훗날 맨해튼 프로젝트의 산실이 되기도 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우수한 성적으로 에티컬 컬처 스쿨을 졸업한 후 전혀 다른 세계인 하버드 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3년 만에 화학 학사 학위를 받고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으나 물리학에 더 관심을 두고 있던 그는 물리학계에서 “중심에 더 가까운” 영국 케임브리지를 선택하고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1906년)인 J. J. 톰슨의 연구실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그의 신경과민이 점점 심해지는데 특히 실험 물리학자인 지도 교수 블래킷의 인정을 받지 못한 좌절감과 질투심으로 인해 ‘독’을 바른 사과를 블래킷의 책상에 올려놓는 돌발 행동을 하게 되고, 정신과 상담을 조건으로 사태가 수습되었다. 그가 즐겨 읽던 프루스트 등의 문학 작품은 그의 정신을 안정시켰습니다.
현대 물리학 혁명의 현장으로
케임브리지에서 힘겨운 1년을 보내고 난 오펜하이머는 비로소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재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괴팅겐 대학교 이론 물리학 연구소의 소장이었던 막스 보른은 하이젠베르크와 슈뢰딩거가 최근의 논문에서 제기한 이론적 문제를 두고 고심하는 오펜하이머에게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보른의 초청을 받고 괴팅겐 대학교로 옮겨 제임스 프랭크, 오토 한, 조지 웰렌베크, 폴 디랙, 요한 폰 노이만 등과 교류했습니다.
\954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보른은 1924년에 ‘양자 역학(quantum mechanics)’이라는 말을 만들었고 양자의 세계에서 상호 작용의 결과는 확률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제안했습니다.
평화주의자이자 유태인이었던 보른은 오펜하이머와 같은 민감한 젊은 학생에게 이상적인 스승이었습니다.
23세의 대학원생 오펜하이머는 괴팅겐에 머무는 동안 무려 17개의 논문을 출판했습니다.
괴팅겐은 막스 플랑크의 양자 발견, 아인슈타인의 위대한 업적인 특수 상대성 이론, 보어의 수소 원자의 거동에 대한 이론적 해명, 하이젠베르크의 행렬 역학, 그리고 슈뢰딩거의 파동 역학 이론 등, 이론 물리학의 거대한 혁명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1년 전의 불안한 감정 상태는 자신감으로 바뀌었고 오펜하이머는 떠오르는 스타가 되어 있었습니다.
나치스의 대두와 유태인 교수의 정치 편력
1920년대 후반부터 활발한 학문적 활동을 펼치던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에게 새로운 시련이 닥쳐왔습니다. 심미안을 추구하던 자유인 오펜하이머도 1933년 히틀러가 독일에서 권력을 장악하자 오펜하이머는 정치 문제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해 4월 독일에서는 유태계 독일인 교수들이 별다른 이유 없이 대학에서 쫓겨났습니다. 1934년 봄, 오펜하이머는 독일인 물리학자들이 나치스 독일에서 이민해 나오는 데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한 광고 전단지를 보고 이후 2년 동안 연봉의 3퍼센트(1년에 약 100달러 정도)를 보내기로 약속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1954년 심문관들에게 “1936년 무렵에 나의 관심사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1936년은 오펜하이머가 진 태트록을 처음 만난 해이기도 합니다. 심리학도로서 나중에 정신과 의사가 되는 진은 오펜하이머의 “진정한 사랑”이었습니다.
오펜하이머를 이론에서 행동으로 움직이게 한 것은 진의 열정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녀는 공산당원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당보다도 대의였으며 1936년 가을 무렵 그녀를 사로잡은 가장 중요한 대의는 곤경에 빠진 스페인 공화국이었습니다.
결혼에 뜻이 없던 진과 헤어진 오펜하이머는 그의 아내가 되는 캐서린 ‘키티’ 퓨닝 해리슨을 만났습니다. 그녀의 전 남편 중 하나인 조 달레트는 스페인 내전에 참여한 공화주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제자이자 친구인 로버트 서버에 따르면 “그녀의 관심은 오펜하이머의 경력을 진전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키티와의 사이에 두 자녀를 두고 평생 서로를 보살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과의 관계 역시 그녀가 의문의 자살을 감행할 때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로 인해 훗날 소련의 스파이로 몰리기도 합니다.
사상 초유의 계획, 맨해튼 프로젝트
오펜하이머의 이름은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 원자 폭탄을 개발하기 위한 극비 군사 연구소를 이끌 후보자로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이에 앞서 유럽에서 전쟁이 시작되기 한 달 전인 1939년 9월 1일 아인슈타인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새로운 종류의 대단히 강력한 폭탄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때 설치된 우라늄 위원회는 2년 뒤 “전쟁의 승패를 결정지을 것”이라는 새로운 무기에 대한 보고서를 받고 나서 활동에 박차가 가해지며 백악관 직속의 위원회가 새로 구성되었습니다.
과거 정치 활동과 공산주의자들과의 교류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과 34세 때 맨해튼 프로젝트의 지휘자로 선발되었습니다.
오펜하이머가 우라늄 관련 회의들에서 중요한 해결책들을 내놓음으로써 어느새 그가 없으면 관련 업무가 진행되지 않을 정도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는 뛰어난 이해력과 열정뿐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기술도 갖추고 있었습니다.
15년 동안 쌓아 온 과학적 업적과 다양한 사회생활을 통해 오펜하이머는 미숙한 과학 영재에서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로 탈바꿈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프린스턴, 시카고, 버클리 등지에서 고속 중성자 핵분열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는 여러 그룹들이 똑같은 작업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들을 한 곳으로 모아 공동 연구를 하도록 강조했습니다.
그는 전국 각지에 퍼진 맨해튼 프로젝트 소속 기관들의 연구 개발 활동을 통합하여 사용 가능한 핵무기를 만드는 일을 관장하게 되었습니다.
로스앨러모스에 세워진 비밀 연구소는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포함한 민간인 4000명과 군인 2000명이 거주하는 하나의 마을이었습니다.
슈퍼 폭탄에 맞선 한 사람
제2차 세계 대전이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도 조급해졌습니다.
1945년 4월 30일 히틀러가 자살을 했고, 그로부터 8일 후 독일은 항복했습니다. 세그레가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첫마디는 “우리가 너무 늦었군.”이었습니다.
로스앨러모스의 과학자들은 프로젝트의 정당성을 나치스 굴복에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마침내 7월 14일, 트리니티 핵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연구가 성공한 데 대한 환희, 다음 연구를 향한 순수한 매진. 리처드 파인만을 비롯해 많은 과학자들은 역사적 현장에 서는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핵 실험이 끝나자 로스앨러모스를 휘감은 성취감과는 별도로 오펜하이머는 책임감에 대한 더 큰 고민에 빠졌습니다. 오펜하이머의 지도 아래 만들어진 원자 폭탄이 이제 곧 사용될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소련과의 군비 경쟁을 촉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습니다.
전쟁 직후 오펜하이머는 핵무기의 존재가 미국에, 나아가 전 세계에 위협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미국의 핵 독점은 유지될 수 없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다른 과학자들과 같이, 그는 소련이 3~5년 안에 미국의 핵 독점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냉전 군사 체제에 맞서 싸우게 된 오펜하이머는 1949년이 되자 핵 군축과 관련된 상황이 호전되리라는 기대를 버리고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해 정부와 일반 대중이 원자력에 가지고 있는 환상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계속 노력했습니다.
그는 또한 민간 핵발전소에 내재된 잠재적 위험 요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이와 같은 발언들은 핵 기반 기술의 개발을 선호하던 국방부나 전력 산업 관계자들로부터 미움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전 세계적인 개방, 정보 공유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비밀주의와 두려움 때문에 극소수의 사람들만 정보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는 올바르게 행동할 수 없습니다.”라고 단언했으며 오펜하이머는 유일한 구제책은 “솔직함”뿐이라고 결론지었습니다.
현대판 갈릴레오, 열린 마음의 주인
오펜하이머는 매카시 반공 히스테리가 극에 달했던 시기에 가장 눈에 띄는 희생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원자의 힘을 이용하기 위한 노력에 앞장섰지만, 그가 동포들에게 위험성을 경고하려고 했을 때, 즉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의존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미국 정부는 그의 충성심을 의심했고 그를 재판정에 세우고 말았습니다.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 이사회 의장인 루이스 스트라우스의 주도 하에 다분히 악의적인 고발과 불법 도청으로 그의 개인적인 연애사까지 들먹이며 수모를 안겨 준 보안 청문회가 끝났습니다.
스트라우스는 개인적 복수심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오펜하이머를 소장직에서 유임시키는 투표를 몇 달 미뤘습니다.
그동안 고등 연구소의 교수들은 오펜하이머를 지지하는 공개서한을 작성해 서명을 받을 시간을 벌었으며 연구소의 종신 교수들은 모두 서명했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중절모와 더불어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되어 버린 애연 습관으로 얻은 후두암으로 1967년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까지 프린스턴 고등 연구소 자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